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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의거 당시의 모습을 유족은 어떻게 기억할까 - 유족회 인터뷰 2부

315의거 당시의 모습을 유족은 어떻게 기억할까 - 유족회 인터뷰 2부

유공자칼럼

2023. 3. 15.




315의거 희생자 유족이 기억하는 그날의 모습






Q1. 유공자님도 소개해 드리고 싶어요.

회장님 : 고인이 된 저희 남편은 김 태 열 열사입니다.

참 불의를 보고 못참는 사람이었습니다.

참 좋은 사람인데, 아니다 하는거는 죽어도 아닌거고,

됐다는건 죽어도 줘야하는 그런 사람이에요.



우리 영감이 결혼 날짜는 이미 잡아뒀고,

우리 집에 자주 왔다갔다 하니까 그 날(선거날)도

우리집에 마이만 벗어두고 투표소에 가서 참관인으로 갔던 겁니다.

그러다가 이제, 부정 선거하는 모습을 보고 화를 못참아서

그대로 지금 발언지, 그 때 당시 마산 시청으로 가서 항의를 한겁니다.

그대로 데모에 참여했다가 잡혀갔습니다.






고문을 너무 많이 당했어요. 돌아가시기 전까지 평생을 고생했습니다.

총 뒷편으로 손가락을 내려찍어가지고 그게 썩어들어갔어요.

그래서 손톱 2개를 아예 잘라냈죠.

돌아가실 때도 손톱 2개가 없는 채로 가셨어요.

생전에 매일 손을 뒤집어보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그렇게 돼버린걸 어쩌겠나, 그걸 왜 계속 들여다보냐 하니까

숨기고 그러셨었죠.

결혼 반지도 왼손에는 못하고, 오른손에 평생 차고 살았어요.






Q2. 데모하러 가신걸 언제 아셨어요?

회장님 : 처음엔 몰랐어요.

시어머니가 어린 시누이한테

새언니 집에 가서 있는지 한번 보고 와라해서 보냈는데 없는거예요.

그 때 집에 저희 아버지가 계셨는데, 옷 벗어두고 잠깐 나갔다 들어온다 해서

담배나 한대 피러 간줄 알았는데 사람이 안온다 말씀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아버지 저녁 차려드리고, 시누이 손잡고, 그 사람 찾으러 온 동네를

다 돌아다녔습니다.



근데 동네에 무슨 깡패같은 사람들이 빨갱이 잡는다면서

곤봉을 들고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막 집에 가라고 겁주고, 사람 머리를 툭툭 치고 그러니까 무서워서

옆에 골목으로 숨어서 계속 찾아 다니다가 한 저녁 9시 즈음까지 돌아다녀도

결국에는 못찾았어요.

그때 총을 하도 쏴서, 여기 무학초등학교 앞까지 길이 다 완전 피바다였어요.






Q3. 그렇게 돌아다녀도 못찾으셨는데, 어떻게 소식을 알게 되셨나요?

회장님 : 우리 이종 사촌 형부가 기자였어요. 시청 출입하는 기자.

돌아다녀도 못찾고, 다시 집에 오니까 아버지께서 형부한테 가서 물어봐라

하셔서 찾아갔어요.

형부가 처제 왜 왔냐고 하길래 내가 조금 있음 결혼을 하는데,

우리집에 옷만 벗어두고 나갔다고, 어디로 갔는지를 모르겠다고 하니까,



“많이 맞았겠네… 지금 안보이면 어디 가서 많이 맞았겠다.” 딱 이러셨어요.



그러곤 형부가 아까 시청 들렸다가 나올 때 보니까

시청 지하실에 사람들이 피를 줄줄 흘리면서 다 죽어가는거를 집어넣어놨더라,

거기 다시 가서 찾아보고 알려줄테니까 형부 집에 가있으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시누이는 집에 보내고, 저는 이종사촌 언니, 형부네 집에 가서 기다렸죠.

한참 뒤에 형부가 와서 하는 말이 거기 사람들이 많은데,

죽은 사람이 한바가지더랍니다.

거기서 우리 남편을 찾았는데, 살아는 있는데 보니까 하도 맞아서

기진맥진이라 말을 못하더랍니다.

일단 지금 옷이 너무 엉망이라고, 내일 갈아입을 옷 챙겨서 아침에 오라 하시길래

시어머니한테 말하고, 옷 챙겨서 형부한테 전해줬습니다.



그렇게 옷 챙겨들고 다시 들어가시더니, 한 1시간 뒤쯤 나오셨어요.

그리곤 12시에 경찰서로 넘어간다고 전해주시곤, 그대로 경찰서로

보낼 수 밖에 없었죠. 경찰서 갔다가 이제 교도소로 넘어갈건데

우리 형부가 형사님들이랑 잘 아는 사이라 형사님들한테

“우리 처제랑 결혼할 사람인데 이런 모습으론 안된다,

책임지고 집에서 치료만 좀 받고, 병원에 입원 좀 시킬 수 있게 해달라”

라고 사정 사정을 해서 겨우 데리고 나왔습니다.






경찰서 들어간지 한 4일만에 데리고 나왔습니다. 형부가.

5일되면 교도소로 보내는데 4일만에 데리고 나온거죠.

그때 손가락을 그렇게 만들었어요, 손톱 2개를. 도망 못가게 하려고.



사무국장님 : 그 때 마산 각지에서 선거한 투표함을

마산 시청에 다 모아서 개표를 했거든요.

그래서 마산 시청 앞에 시민들이 다 모여서 돌 던지고, 데모하고 하니 총을 다 쏘고,

많이 죽고, 다치고 그랬던 겁니다.

그 앞에서 죽은 사람들, 다친 사람들 다 그냥 동물처럼

마산 시청 지하실에 던져 넣은겁니다.

이렇게 설명해 드리면 알기 쉬우시겠지요.



회장님 : 평생을 고생했습니다.

오래 못살았어요. 한 30~ 40년 살 동안 맨날 병원 다니고,

하루도 병원 안가고, 약 안먹는 날이 없을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너무 많이 맞아서…






Q4. 315의거에 대해 우리 보훈상조나, 국민 여러분께 바라시는 점이 있으신가요?

회장님 : 바라는건 없습니다.

315명칭만 찾을 수 있다면 저는 더 바라는 게 없습니다.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이렇게 노력해서 얻은 315 진실화해위원회라던가

그런 조사들이 계기가 되어서 315라는 명칭이 당당하게 419에서 독립을 해서

나올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



315의거가 당당히 독립적으로 빛을 발휘해서

후세대에 충분한 교육이 잘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할 국가유공자가 많습니다.



하지만, 같은 유공자라 해도

315처럼 419의 그늘에 가려진 채

잊혀지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3.15의거는 대한민국 현대사에 있어

최초의 민주ㆍ민족 운동이었음 을 잊지 않고,

민주주의 정신의 시작을 알린

매우 중요한 사건임을 우리는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인터뷰에 매우 진지한 자세로

깊에 알지 못했던 부분까지 너무나도 자세히 설명해 주시며

인터뷰에 응해주신 오무선 회장님과 김영달 사무국장님께

깊은 감사와 존경의 뜻을 전합니다.



보훈상조는

보훈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315유족회 인터뷰 1부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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