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공자칼럼
2023. 3. 15.
지난 11월,
보훈상조는 국립 3.15민주묘지 관리소와
보훈 문화 확산을 위한 업무 협약을 체결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3월 15일,
3.15의거 63주년을 맞이하여
보훈상조에서 315의거희생자유족회와
만남을 가지고,
pc지원과 함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인터뷰에는 유족회 회장, 오무선 회장님과
사무국장, 김영달 국장님께서 답변해 주셨습니다.
315의거 희생자 유족회와의 만남
Q1.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회장님 : 315의거희생자유족회 회장입니다. 회장 오 무 선
사무국장님 : 사무국장 김 영 달 입니다.
Q2. 315의거희생자유족회는 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요?
회장님 : 지금 현재로서는 315가 아니라 419혁명희생자유족회를 통해서
지원금이나 연금을 전달받고 있어요.
전달받은 지원금으로 우리 유족회원분들이랑 점심식사를 한다던지,
형편이 좀 좋지 않은 회원들에게 또 지원금이 더 갈 수 있도록 한다던지
이렇게 유족들 친목도모 활성화와 불우회원 돕기 활동 등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2년 1월부터 진실화해위원회를 만들어서 억울한 분들 와서
말씀하실 수 있도록 (자리를) 하고 있어요. 버스나 신문에도 다 알리고…
우리가 막 열심히 다니니까 그게 안타까워보였는지 몇몇 국회의원님들이
또 도움을 주셔서 21년 6월에 마침내 ‘315특별법’이 만장일치로 통과됐습니다.
그 때 지금 여기 이 자리에서 국회의원님 한 7분 참석하셔가지고
기자회견도 열고 그랬거든요.
Q3. 나라에서 주는 지원은 어떻게 되나요? 급수가 있나요?
회장님 : 부상에 따라 급수별로 연금이 나오긴 하는데, 많이 부족합니다.
특히 우리 12인 열사님들 유족들이 지금 너무 어렵게 살고 있거든요.
제가 (남편이)6급인데 매월 72만원정도밖에 안받습니다.
저랑 똑같은 6급에 다른 분들은 150 받고요.
같은 급수라도 우리 남편은 폐암으로 돌아가셨다고 인정을 안해주더라고…
그래도 제가 우리 영감 돌아가시고 1년을 연금을 안받으면서
다른 사람들은 받을 수 있게, 처음 18만원부터 시작해서
지금150만원까지 받을 수 있게 했지요.
사무국장님 : 여기 회장님께서는 배우자셔서 직계라 연금이 나오시는데,
저는 저희 형제가 유공자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방계거든요.
방계는 연금이 제로, 아예 안나옵니다.
회장님 : 특히 12인 열사는 학생이 10분, 성인이 2분이라 유족들이 참 못살아요.
연금도 없고.
나는 얼마라도 받는데, 이렇게 힘든 우리 불우회원들, 유족들 보면
뭐라도 더 해주고 싶고 그래요.
그래서 이번에 노력한 결과 23년도 경남도청에서
불우회원들을 위한 지원금도 인상됐습니다.
100만원에서 150만원으로. 5명 주는거에 10만원씩 더 줄 수 있게 된거지.
이런식으로 좀 힘든 회원들한테 지원이 더 갈 수 있도록 국장님이랑 제가 돌아다니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Q4. 315의거 유공자의 유족께서 돌아가시면, 장례는 어떻게 진행되나요?
회장님 : 유공자 배우자는 합장이 가능합니다.
근데 민주운동은 단체가 3갭니다. 유공자 본인들이 속한 단체,
저희같은 유족들이 속한 단체, 그리고 공로자 단체라고 해서 또 있어요.
공로자는 이제 315 의거 당시에 학생 신분으로 데모에 참여를 했다가,
큰 부상 없이 돌아온 유공자를 공로자라고 따로 부릅니다.
공로자 본인이 돌아가시면 민주묘지에 유공자처럼 똑같이 안장이 가능하고 배우자까지 합장이 가능합니다.
Q5. 이름을 찾아보니 419혁명희생자유족회 경남지부로 되어있어요. 왜 315가 아닌 419 이름을 쓰게 되었나요?
회장님 : 박정희 전 대통령 집권 시절에 통합했어요, 1960년대에
며칠 사이에 한거니까 통합해서 419로 하라고.
그 때 이후로 60년이 넘도록 지금 315라는 명칭을 되찾지를 못해서
우리는 너무 억울하죠.
지금 사회적으로 315라는 명칭을 아예 사용을 안합니다.315라고 써봐야 아무도 모르고, 저희도 어디 가서 419라고 해야
아, 419에 누구누구가 왔다 이렇게 알아듣고 해줍니다.
서울에 본회를 가던, 어디를 가던지…
그래서 315 명칭을 되찾기 위해 한 15년 전부터 국장님하고 저하고
발벗고 나서서 쫓아다니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