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이야기
2020.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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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자리 테이블에는 20대 중후반 쯤으로 짐작되는
여성 네 명이 앉아있었다. 흔한 구성원이었다.
하지만 이야기 주제가 심상치 않았다.
친구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다녀왔는데,
그곳에서 이상한 상황을 벌어졌다고 한다.
바로 상주 역할이 친구가 아닌,
친구 남편이었다는 것이다.
테이블 구성원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의아해하거나, 단순히 궁금해 하거나, 심지어 화를 내는 사람까지…
“딸만 있는 집은 어떡하라고?”
듣고보니 그럴듯한 말이었다.
엿듣고 있던 대화는 어느새 나도 깊은 생각에 잠기게 만들었다.
상주,
‘장례에서 상을 치르는 사람 중 가장 중요한 사람’이다.
조문객을 대접하고 맞절을 하며, 부조금 총 관리를 맡는 사람이다.
반대로 그 외 대다수 가족은 많은 시간을 빈소 밖에서 조문객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들어오는 손님에게 인사하거나
신발정리를 하는 잔일을 맡게 된다.
그렇다면 어떤 기준으로 이런 역할은 나뉠까.
이름도 모르는 그녀의 질문에
보훈상조가 대답해주고자 한다.
딸만 있는 집은 많은데, 여자 상주는 왜 안 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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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어나는 ‘예비여자상주’,
늘지않는 ‘여자상주’
‘남아선호사상’이 옛 말이라는 걸 증명하는 것처럼,
여성 비율이 압도적으로 늘어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여초’ 현상은 이미 진행 중이며,
2029년에는 여성 수가 남성 수를 넘어선다.
그리고 가족 구성원의 수가 적어지며
무남독녀의 비율도 자연스레 높아진다.
또한 임신 및 육아, 직장 연봉 등 사회적 위치로 인해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비혼’을 다짐한 여성 비율도 적지 않았다.
이처럼 무남독녀와 비혼여성가구의 높은 비율은
더이상 ‘예비여성상주’를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 여자상주, 안되는 이유에 대답
그 누구도 속시원히 못해
모두가 “예”라고 말할 때 혼자 “아니오”라고
외칠 수 있는 사람, 흔치 않을 것이다.
여자 상주가 아예 불가능하진 않다.
하지만 직계 가족이 사망하고 모두가 혼란스러워 할 때
상주를 하겠다고 주장할 수 있는 상황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심지어 말리는 가족도 있을 것이고,
혀를 차는 조문객도 마주칠 것이다.
실제로 위와 같은 경험을 겪은 여성 얘기도 있다.
외동딸인 자신이 상주를 맡겠다며
정장바지를 입고 완장을 차겠다고 하자
'저 사람 트렌스젠더냐'라고 말한 것을 들어
크게 싸웠다는 사례였다.
‘왜 여자상주는 많이 없는가’에 대한 질문은
어딜 뒤져도 속시원히 찾을 수 없었다.
‘예전부터 그래서’, ‘유교문화라서’라는
시원찮은 답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꼭’ 남자가 상주를 해야한다는 법은 없다.
여성 상주도 치마 대신 정장바지를 입을 수 있다.
- 보훈상조 장례지도사가 생각하는 여자상주는?
보훈상조의 Y 본부장은 15년 이상을 장례지도사로 지냈지만,
여성에게 완장을 채워준 적이
'단 한번도 없다'고 말했다.
300명 중 1명이라는 가정을 인터뷰지에 적어놨던 나는
당황하며 그 문장을 지워야만 했다.
딸이 영정사진을 들고 앞에 서거나 문상을 받는 것은 보았는데,
완장 착용은 드문게 아니라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단호한 경험만큼이나
그녀의 여자상주에 대한 생각도 단호했다.
'여성, 남성'보다는 '딸아들'로 통용되는 것이
고인에게도, 장례 문화에도 적합하다 게 그녀의 생각이다.
그녀는 최근 장례 문화에 나타난 근조리본 문화를 설명해주었다.
상주를 나타내는 완장대신 상복에 모두가 착용하는 근조리본은
딸, 아들이라 적혀있다며 바람직한 변화라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Y 본부장은 보훈상조 고객 중
여성 상주를 맡으며 완장을 차고 싶고,
치마저고리 대신 검은정장을 입는다고 하면
당연히 해드리겠다고 말했다.
말릴 필요도,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