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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참전용사 인터뷰3 : 돌아온 나를 알아보지 못한 어머니

유공자칼럼

2022. 12. 13.

안녕하세요, 보훈가족 여러분.

지난 10월 국군의 날 즈음에,

서울에 있는 6.25참전유공자회에 방문해서

6.25전쟁과 관련해 많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오늘 인터뷰의 주인공은

사천강지구 전투에 참전하셨고,

현재 대한민국 6.25참전유공자회 감사로

힘써주고 계신 예비역 해병중사

구장회 감사님을 모셨습니다.

6.25참전유공자의 이야기

6.25전쟁 당시에 나이가 어떻게 되셨나요?

중학교 1학년 때 6.25를 만나가지고

수원쯤 갔는데 폭격을 맞았어요.

거기서 어머니, 동생 다 잃어버렸어요.

그래서 홀홀단신으로 부산까지 걸어서 피난 간

그 기간이 거의 석달 열흘 될거예요.


6.25전쟁에 참전한 계기가 있으실까요?

광복동 거리에 나가서 보니까

해병대 지원병 모집 방(공고)가 붙어있더라고.

(돈이 없어)거지니까, 그 때 생각이

이렇게 죽을 바에는 군인이 돼서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다 그런 각오로

참전했어요.

형제분들과는 다 연락이 되셨나요?

큰 형님이 그 당시에 2대 국회의원이었어요.

그때는 형을 증오했어. 미웠어.

자기 가족들만 싹 데리고 특별열차 타고 피난갔어.

그 다음에 한강 다리가 끊어지고…

그러고는 내가 형을 안찾았어.

나중에 어떻게 수소문해서 알고

훈련소 수업시간에 우리 큰 형수가

나를 면회를 왔더라고.

나는 이미 군인이 됐으니까 전방에 가서

적이라도 하나 죽이고 죽겠다 그랬더니

도련님 이러지 말라고 울면서 말리더라고.

어머님과 누이분은 어떻게 되셨나요?

우리 어머니 고향이 충청도 예산이에요.

어머니를 보고 동네 어른들이 막

한내댁 한내댁 하더라고.

그래서 한내라는 데를 찾아가서

외사촌형 이름을 대니까 “아, 그양반이

우리 동네 의용 소방대장이다.” 그러면서

집을 가르쳐 주는거예요.

“여기 최신성씨댁 맞습니까?” 하니까

벌떡 우리 어머니가 일어나잖아.

절구통 뒤에서.

그냥 엄마하고 쫓아가서 껴안았어.

근데 어머니가 군인이 와서 껴안으니까

놀래가지고 미는거예요, 누구냐고.

내가 장회라고…(그랬지)

엄마 만나서 그 순간 한 2~3분 침묵이 흘렀고,

그 다음부터는 막 둘이 붙들고 우는거야.

뭐 할말이 있어요.


구장회 감사님께서는 인터뷰에

답변을 해주시는 동안,

전쟁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며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전쟁이 만들어낸 이별과 아픔을

누가 치유해줄 수 있을까요?

감사님께서는 현재 다른 나라에서 벌어진

전쟁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해주셨습니다.

전쟁에 대한 생각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전쟁은어떻게 보시나요?

그 전쟁도 그래요.

빨리 끝냈으면 좋겠어요.

사진 보면 그 어린 것을 안고 부모들이

막 울고 있는걸 보고, 우리 과거 생각도 나고…

그래서 전쟁은 해선 안되는거야.

빨리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벌어지는 전쟁은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픔으로 영원히 남습니다.

슬픔과 아픔 위로 세워진 영광은

과연 좋은 결과일까요?

전쟁은 다시는 일어나선 안되는 일입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시어 많은 이야기를 전해주시고,

전쟁의 참사에 대해 다시 한번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해주신 감사님께 감사드리며,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날이

빨리 다시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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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참전용사 인터뷰3 : 돌아온 나를 알아보지 못한 어머니

유공자칼럼

2022. 12. 13.

안녕하세요, 보훈가족 여러분.

지난 10월 국군의 날 즈음에,

서울에 있는 6.25참전유공자회에 방문해서

6.25전쟁과 관련해 많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오늘 인터뷰의 주인공은

사천강지구 전투에 참전하셨고,

현재 대한민국 6.25참전유공자회 감사로

힘써주고 계신 예비역 해병중사

구장회 감사님을 모셨습니다.

6.25참전유공자의 이야기

6.25전쟁 당시에 나이가 어떻게 되셨나요?

중학교 1학년 때 6.25를 만나가지고

수원쯤 갔는데 폭격을 맞았어요.

거기서 어머니, 동생 다 잃어버렸어요.

그래서 홀홀단신으로 부산까지 걸어서 피난 간

그 기간이 거의 석달 열흘 될거예요.


6.25전쟁에 참전한 계기가 있으실까요?

광복동 거리에 나가서 보니까

해병대 지원병 모집 방(공고)가 붙어있더라고.

(돈이 없어)거지니까, 그 때 생각이

이렇게 죽을 바에는 군인이 돼서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다 그런 각오로

참전했어요.

형제분들과는 다 연락이 되셨나요?

큰 형님이 그 당시에 2대 국회의원이었어요.

그때는 형을 증오했어. 미웠어.

자기 가족들만 싹 데리고 특별열차 타고 피난갔어.

그 다음에 한강 다리가 끊어지고…

그러고는 내가 형을 안찾았어.

나중에 어떻게 수소문해서 알고

훈련소 수업시간에 우리 큰 형수가

나를 면회를 왔더라고.

나는 이미 군인이 됐으니까 전방에 가서

적이라도 하나 죽이고 죽겠다 그랬더니

도련님 이러지 말라고 울면서 말리더라고.

어머님과 누이분은 어떻게 되셨나요?

우리 어머니 고향이 충청도 예산이에요.

어머니를 보고 동네 어른들이 막

한내댁 한내댁 하더라고.

그래서 한내라는 데를 찾아가서

외사촌형 이름을 대니까 “아, 그양반이

우리 동네 의용 소방대장이다.” 그러면서

집을 가르쳐 주는거예요.

“여기 최신성씨댁 맞습니까?” 하니까

벌떡 우리 어머니가 일어나잖아.

절구통 뒤에서.

그냥 엄마하고 쫓아가서 껴안았어.

근데 어머니가 군인이 와서 껴안으니까

놀래가지고 미는거예요, 누구냐고.

내가 장회라고…(그랬지)

엄마 만나서 그 순간 한 2~3분 침묵이 흘렀고,

그 다음부터는 막 둘이 붙들고 우는거야.

뭐 할말이 있어요.


구장회 감사님께서는 인터뷰에

답변을 해주시는 동안,

전쟁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며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전쟁이 만들어낸 이별과 아픔을

누가 치유해줄 수 있을까요?

감사님께서는 현재 다른 나라에서 벌어진

전쟁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해주셨습니다.

전쟁에 대한 생각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전쟁은어떻게 보시나요?

그 전쟁도 그래요.

빨리 끝냈으면 좋겠어요.

사진 보면 그 어린 것을 안고 부모들이

막 울고 있는걸 보고, 우리 과거 생각도 나고…

그래서 전쟁은 해선 안되는거야.

빨리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벌어지는 전쟁은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픔으로 영원히 남습니다.

슬픔과 아픔 위로 세워진 영광은

과연 좋은 결과일까요?

전쟁은 다시는 일어나선 안되는 일입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시어 많은 이야기를 전해주시고,

전쟁의 참사에 대해 다시 한번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해주신 감사님께 감사드리며,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날이

빨리 다시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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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공자칼럼

2022. 12. 13.

안녕하세요, 보훈가족 여러분.

지난 10월 국군의 날 즈음에,

서울에 있는 6.25참전유공자회에 방문해서

6.25전쟁과 관련해 많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오늘 인터뷰의 주인공은

사천강지구 전투에 참전하셨고,

현재 대한민국 6.25참전유공자회 감사로

힘써주고 계신 예비역 해병중사

구장회 감사님을 모셨습니다.

6.25참전유공자의 이야기

6.25전쟁 당시에 나이가 어떻게 되셨나요?

중학교 1학년 때 6.25를 만나가지고

수원쯤 갔는데 폭격을 맞았어요.

거기서 어머니, 동생 다 잃어버렸어요.

그래서 홀홀단신으로 부산까지 걸어서 피난 간

그 기간이 거의 석달 열흘 될거예요.


6.25전쟁에 참전한 계기가 있으실까요?

광복동 거리에 나가서 보니까

해병대 지원병 모집 방(공고)가 붙어있더라고.

(돈이 없어)거지니까, 그 때 생각이

이렇게 죽을 바에는 군인이 돼서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다 그런 각오로

참전했어요.

형제분들과는 다 연락이 되셨나요?

큰 형님이 그 당시에 2대 국회의원이었어요.

그때는 형을 증오했어. 미웠어.

자기 가족들만 싹 데리고 특별열차 타고 피난갔어.

그 다음에 한강 다리가 끊어지고…

그러고는 내가 형을 안찾았어.

나중에 어떻게 수소문해서 알고

훈련소 수업시간에 우리 큰 형수가

나를 면회를 왔더라고.

나는 이미 군인이 됐으니까 전방에 가서

적이라도 하나 죽이고 죽겠다 그랬더니

도련님 이러지 말라고 울면서 말리더라고.

어머님과 누이분은 어떻게 되셨나요?

우리 어머니 고향이 충청도 예산이에요.

어머니를 보고 동네 어른들이 막

한내댁 한내댁 하더라고.

그래서 한내라는 데를 찾아가서

외사촌형 이름을 대니까 “아, 그양반이

우리 동네 의용 소방대장이다.” 그러면서

집을 가르쳐 주는거예요.

“여기 최신성씨댁 맞습니까?” 하니까

벌떡 우리 어머니가 일어나잖아.

절구통 뒤에서.

그냥 엄마하고 쫓아가서 껴안았어.

근데 어머니가 군인이 와서 껴안으니까

놀래가지고 미는거예요, 누구냐고.

내가 장회라고…(그랬지)

엄마 만나서 그 순간 한 2~3분 침묵이 흘렀고,

그 다음부터는 막 둘이 붙들고 우는거야.

뭐 할말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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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며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전쟁이 만들어낸 이별과 아픔을

누가 치유해줄 수 있을까요?

감사님께서는 현재 다른 나라에서 벌어진

전쟁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해주셨습니다.

전쟁에 대한 생각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전쟁은어떻게 보시나요?

그 전쟁도 그래요.

빨리 끝냈으면 좋겠어요.

사진 보면 그 어린 것을 안고 부모들이

막 울고 있는걸 보고, 우리 과거 생각도 나고…

그래서 전쟁은 해선 안되는거야.

빨리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벌어지는 전쟁은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픔으로 영원히 남습니다.

슬픔과 아픔 위로 세워진 영광은

과연 좋은 결과일까요?

전쟁은 다시는 일어나선 안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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